2008년 7월 8일 화요일
제 3차 하르코프 공방전
9장.
SS 기갑군단이 북으로 방향전환하다.
켐프 분견군이 폴타바와 크라스노그라드에서 방어전에 임하는 동안 SS 기갑군단은 시넬니로보와 파블로그라드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에 휩쓸려 있었다. 2월 23일 쿰의 연대 “Der Fuehrer "는 파블로그라드 일대에서 방어전을 지속하며, 북쪽과 동쪽으로부터 가해지는 소련군의 공격을 격퇴해내고 있었다. 하멜 Harmel 전투단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철도선 주변에 위치한 촌락으로부터 소련군을 구축하는 전투를 지속하고 이었다.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에서 파블로그라드로 이르는 주 철도선은 몇 개의 지선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그중 하나는 크라스노아르메이스코예로 향했고, 나머지는 스탈리노를 향하고 있었다. 이 지선이 제 1 기갑군으로 통하는 주보급로였다.
아침에 하멜은 지친기색없이 자신의 연대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극도로 지친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격려하고 있었다. 연대는 수일째 휴식없이 공격작전에 임해왔었고,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탈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도 소련군이 일대에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공격은 지속되어야 했다. 전날 감행된 독일군 제 15 보병사단과 Das Reich 사단의 공격으로, 소련군 제 124 근위 저격 사단의 1개 연대는 시넬니코보 동방으로 이미 밀려나 있었다. 소련군은 라즈도리와 마리에프카 일대의 마을에 위치를 잡고 일대에서 발생한 소련군 낙오병을 합세시키고 있었다. 돌격포와 수투카 급강하폭격기의 지원을 받으며, 연대는 마리에프카를 공격했고, 곧 소련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하멜의 개인적인 리더쉽은 마리에프카 공격내내 발휘되었다. 마을이 완전히 독일군 수중으로 들어왔을때 전투가 벌어진 하루종일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소련군 2개 연대 병력 대다수가 소탕되었다.
연대 수색병력들은 제 6 기갑사단과 접촉을 확고히 했다. 제 6 기갑사단은 시넬니코보 남동쪽으로부터 소련군 제 244 저격사단의 가벼운 저항을 이겨내면서 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공격을 통해 파블로그라드 동쪽의 보구슬라프와 페트로파블로프카에서 사마라강을 넘어간 2개의 교두보가 확보되었다. 이 시점에서 호트의 제 4 기갑군의 2개 기갑군단이 손을 잡았고, 보다 북으로 진격하여 소련 제 6군의 연결선을 일소하고, 뤼발코의 제 3 전차군을 향해 덮칠 준비가 완성되었다.
드네프르 강을 향해 서진해왔던 소련군 제 25 전차군단은 SS 기갑군단이 시텔니코보와 파블로그라드로 진격함에 따라 본대와 연결이 차단되어 버렸다. 바투틴은 여전히 군단에게 서진하라고 다그쳤으며, 심지어 독일군의 반격이 시작된 뒤에도 태도의 변화가 없었다. 제 25 전차군단의 주력은 시넬니코보와 자포로제 사이에서 발이 묶여있었고, 선견대는 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미 보급이 달리고 있었던 형편에서 2월 23일 본대와 차단이 발생한 이후, 전혀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항공보급도 없었고, 소련군의 모든 항공보급 역량은 포위된 부대 가운데 생존가능성이 보다 높은 곳에 우선 순위가 주어져 있었다. 제 15 보병사단은 포위된 소련군을 노보모스코프스크로부터 압박해 Das Reich가 대기중인 방향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바로 동쪽에는 제 6 기갑사단이 도로를 가득메우며, 사마라에서 북쪽으로 진격방향을 잡고 있었다. 소련군의 항공지원은 완전히 결여되었고, 독일 항공기들은 무방비상태의 소련군 병력과 차량이라는 손쉬운 먹이를 발견했다. 제 25 전차군단의 정치장교는 자신의 전차여단이 ‘공중에서 가해지는 폭격에 너무 취약했다. 우리는 7대의 전차를 상실했고, 다수의 병력손실이 발생했다.’ 라고 보고했다.
결국 제 25 전차군단은 독일군 포위망을 탈출하여 제 6군의 본대와 합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미 연료가 고갈된 전차에서 남은 연료를 모아서, 소수의 전차와 트럭에 주입하여 간신이 운행시켰다. 결국 이렇게까지 끌어모았던 연료마저 바닥을 드러냈고, 차량들의 시동이 꺼지면서 모든 차량과 전차가 버려졌다. 소총과 기관총정도의 무장만 가진채로 생존자들은 보다 소그룹으로 분산하여 동쪽을 향해 나갔다. 이들은 이미 지나간 독일군 대열 틈새로 스며들어 사지를 벗어나고 있었다. 독일군은 최대한의 속도로 북진중이었다. 전차는 연료가 떨어지면 소각처리하며 버려졌다. 야포들은 여기저기 도로를 따라 버려졌다. 연료가 떨어져 멈춰서버린 트럭에 견인된 채로 버려진 야포도 많았다.
그 사이 Der Fueher 연대는 도이치란트 대대에서 파견된 Macher 제 16대대와 일부 SS 부대를 증강받고, 파블로그라드에 포위된 소련군 저항거점과 낙오자들을 청소했다. 소탕임무가 완수되자 마을의 북쪽과 북동쪽에 적의 역습에 대비한 새로운 방어망을 형성했다. 마을에서 축출당해 사마라강을 건너 도주한, 소련군 제 35 근위저격군단의 전력이 소모된 연대들은 브자소포크와 베르프키 일대의 마을을 따라 방어선을 형성했다. 사단은 그들에게 증강될 예정이었던 제 16 근위 전차 여단소속 전차들로 강화되었다. 소련지휘부는 독일 Das Reich 사단의 진격을 막기위해 사마라 강변 일대에서 강력안 방어선을 확립할 것을 주문했다. 소련군이 사격거점을 마련코자 참호작업을 하던 중에 남쪽에서 파블로그라드를 향해오전 토텐코프 사단과 맞닥뜨리게 된다.
Das Reich가 도하 준비를 하는 동안 모토사이클 대대가 파블로그라드에서 노보 모스코프스크로 향하는 도로를 확보하라는 임무를 넘겨받았다. 이 임무는 결코 쉽지 않았다. 도로 곳곳에서 소부대에서 상당한 규모에 이르는 러시아군이 동쪽으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고자 수시로 넘나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무질서한 소련군 패잔병들은 파블로그라드 서방에 위치한 교차로를 점거하거나, 마을을 점거할 때 수시로 도로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패잔병들 중에 중대규모의 인원이 가끔 한 두 대의 전차와 움직일때는 SS 보안병력이나, 보급병력에는 실질적인 위협이었다. Das Reich 사단의 모터사이클 대대소속 중대장이었던 헤르만 부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한다.
[ 2월 23일, 내 중대는 노보모스콥스크와 파블로그라드를 잇는 도로상의 북쪽 마을을 소탕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중대는 수륙양용차량을 장비하고 있었다. 대략 절반 정도가 기관총이 장착되어 있었다. 우리는 1월말 키예프에서 64대의 수륙양용차량을 수령했는데, 현시점에서 45대 정도가 작전가능했다.
나는 중대의 선두에 위치해있었고, 쌍안경을 통해 마을 서쪽 끄트머리에서 일어나는 적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관찰할수 있었고, 땅에 파묻은 T-34도 확인됐다. 우리와 마을사이에는 대략 2.5Km의 거리가 있었고, 그사이는 평평한 지면에 얕은 눈으로 덮여있었다.
나는 중대원들에게 넓게 산개할 것을 지시했고, 공격의 제 1파로 기관총을 장비한 20대의 차량을 앞세웠고, 나머지는 2선에 정렬시켰다. 우리는 50-60Km의 속도로 차량을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수륙양용차량들은 도랑과 움푹패인 지형에서 튀어 올랐고, 적과의 거리가 수백미터에 근접하면서, 최대한의 속도를 내면서 기관총 사격을 개시했다.
실질적인 전술적 효과는 전무했으나, 적에게 가한 정신적 충격은 매우 컸던것 같다. 적은 T-34 전차마저 내버려두고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도주해 버렸다. 마을 소탕전은 잠시였고, 우리의 피해는 없었다. 적이 버리고 간 상당량의 무기와 소련군의 사상자를 검토했을때, 적은 아군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한 전력이었음은 틀림없어 보였다.]
2월 23일 Das Reich 와 제 15 보병사단 병력이 시넬니코보일대와 파블로그라드 시내에서 소련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일 무렵, 토텐코프의 기갑연대는 페레쉬체피노 지역을 출발했고, 오토 쿰이 지휘하는 토텐코프 연대와 동행했다. 새벽 1시경에 브자소포크와 베르프키 지역을 향한 공격이 개시되었고, 이 곳은 파블로그라드 바로 북쪽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소련 제 35 근위 저격 사단은 파블로그라드 북쪽으로 불과 수킬로미터 떨어진 브자소포크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베르프키 지역은 제 1 근위 전차군단에서 파견된 제 17 근위 전차 여단이 파블로그라드 정북쪽에서 확보하고 있었다. 토텐코프 연대의 임무는 이들 2개 마을의 소련군 보병을 소탕하여 북진에 나설 Das Reich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SS 소령 요아힘 슈바흐가 지휘하는 토텐코프 연대 소속 제 3대대의 행렬은 급작스런 이상고온으로 발생한 진창으로 진격이 지체되고 있었다. 얼어붙었던 도로가 일단 녹아버리자 많은 장륜차량과 궤도형 차량의 이동으로 인해 뻘밭이 되어 버렸다. 대대는 사마라 강변과 평행하게 나있는 소로에서 이동에 무진 애를 먹고 있었다. 사마라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브자소포크 지역과 베르프키 모두를 가로질렀다. 슈바흐의 종대는 진창길을 어렵사리 통과하는데 수시간이 걸렸고, 간신히 마을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의 전초에는 소수의 소련군 보병이 방어하고 있었다.
아침까지 소련군은 축출되었고, 대대는 사마라강 북변으로 드문드문 흩어진 마을을 소탕해 나갔다. 모터사이클 중대가 앞장서고, 브자소포크 일대에서 트럭과 모터사이클에 탑승한 소련군 정찰병력과 접척했고, 소탕했다. 소련군 모터사이클 종대를 섬멸한 후 독일군 수색병력은 코체레스키 일대는 소련군 보병이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SS 병사들은 마을의 서방에서 산개하여, 소련군 거점들을 강습했다. 정확한 포격지원이 뒤따랐다. 8시 30분까지 가가호호에서 짧은 격전이 벌어졌고, 마을은 독일군 수중에 들어왔다. 생존한 소련병은 무리를지어 강을 넘어 남쪽으로 도주했고, 숲이 우거진 곳으로 은신했다.
11시까지 대대는 브자소포크 외곽에 도달했고, 즉시 공격에 들어갔으나, 소련군의 방어는 완강했다. 브자소포크 북쪽의 능선에 소련군은 강화된 방어거점을 마련했고, 이곳은 포격유도를 위한 관측과 주변을 감제하는 고지 역할을 했다. 마을에 주둔한 소련군도 북동쪽과 동쪽에서 증원된 병력이 합세했고, 이들은 독일군이 마을 서쪽에서 공격할 바로 그무렵에 도착했다. 마을 곳곳에서 숨겨둔 T-34가 공격에 나선 독일군에 포격을 가했다. SS 병사들은 소련군의 포격이 시작되자 자신들은 포화앞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사마라강 남쪽에서 가해진 포격은 워낙 격렬하여,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SS 소속 자주 곡사포들이 산개 /방열되어 촌락내의 러시아군 화력 거점에 포격이 가해졌다. 그사이 우군의 포격 엄호하에 척탄병들이 각개약진하고자 사력을 다했다. 격전은 종일 벌어졌으며, 토텐코프 연대소속 제 3대대는 저녁 6시전에 소련군 제 267 저격 사단과 제 19 전차연대가 펼친 강력한 방어선인 마을 외곽까지 전전하고 있었다. 집들 사이사이로 T-34가 숨겨져 있었고, 잘 위장된 소련 보병들과 함께 강력한 화력 거점의 역할을 했다. 소련군이 독일군에게 한발한발 움직일때마다 희생을 강요했고, SS 척탄병은 치열한 격전을 뚫고, 마을의 중심부로 전진해 들어갔다. 도합 5대의 T-34가 격파되었고, 나머지 2대는 파괴되어 소련군으로부터 버려졌다. 그러나 깊은 밤이 되어서도 곳곳에서 격전이 벌어졌고, 가가호호 수색과 격전이 반복되었고, 마을의 일부는 러시아군이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포로에게 획득한 정보에서 베르프키 역시 전차를 포함한 강력한 방어선이 설치되었음이 밝혀졌다. 토텐코프 연대의 제 3 대대가 브자소포크에서 연대의 남익으로 진격해나갈 무렵, 연대의 북익은 로조바야로 밀고 들어가고 이었다.
페레쉬체피노 남쪽의 집결지로부터 토텐코프 연대의 제 2대대는 오렐카를 향해 넓은 산개대형으로 전진을 시작했다. 이곳은 로조바야의 철도중심지 바로 인근이었다. 슐츠의 대대는 오렐카로 통하는 도로 양측으로 평행한 대형으로 접근해 들어갔다. 연대의 북쪽 종대는 SS 소령 발터 베스트만이 지휘하는 사단 수색 대대가 이끌었다. 베스트만의 대대는 속히 전방으로 나아갔고, 이들은 슐츠의 북쪽지역의 체르노글라소프카 일대의 러시아군의 공격을 차단할 임무를 띠고 있었다. 이 곳에서 사단의 작전과 보급은 독일군 라인을 돌파하려는 소련군의 습격으로 방해받았다. 2cm 기관포를 장착한 SPW를 장비한 척후대는 오렐카 남서방에서 소련군 패잔병사이로 습격해 들어갔고, 소련군 대열을 철저히 분쇄했다. 수대의 소련군 경전차를 비롯해 다수의 포로와 다양한 야포 및 여러 중화기들이 독일군의 수중에 들어왔다.
헬무스 베커의 연대는 토텐코프 기갑척탄병 연대 소속 퀸의 제 3대대를 증강받아 아침 6시경 크라즈노 그라드를 출발했고, 남쪽으로 이동하였고, 동시에 본대는 페레쉬체피노를 향해 앞질러 나아갔다. 오후 2시까지 행군대형은 페레쉬체피노를 관통하여 오렐강안으로 통하는 도로에 도달한 후로 동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종대는 막힘없이 진격을 계속하여 여러 마을을 거침없이 통과하여 오렐강안을 불과 수킬로미터 남겨둔 거리에서 정지했다. 그 사이 적의 저항은 미미했다.
적과의 교전없이 진격했지만, 그날이 저물때까지 토텐코프는 아직도 파블로그라드의 Das Reich와 연결되지 못했다. 아이케의 북쪽은 안전하고, 별다른 적의 압력이 없었지만, 토텐코프 연대는 브자소프카 서방에 지체된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사단은 적과의 교전으로 인한 전차손실은 없었다. 그러나, 야간동안의 크라즈노그라드로부터의 행군에서 많은수의 차량들이 도로주변으로 분산되어 버렸다. SS 기갑군단의 전투 일지에는 기갑연대는 18대의 4호전차, 62대의 3호 전차 와 더불어 9대의 티거 전차가 2월 23일 작전 가능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티거들은 견고한 교량이 없는 거친 도로망에서 이동에 심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베커의 SS 토텐코프 제 3 기갑척탄병 연대는 2월 23일의 시점에서 군단 북익의 진격을 견고히 엄호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렐카와 크라즈노그라드 사이의 오렐 강안 양쪽을 지켜내고 있었다. 익일의 토텐코프 연대의 목표는 사마라 강변의 북안을 따라 위치한 마을에서 러시아군을 소탕하고, 파블로그라드 북쪽에서 재결집한 다음 브자소포크와 베르프키 일대에서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러시아군이 마을에서 축출되면, 이들 양 사단은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다음 목표지를 향해 철도선을 따라 공격해들어갈 작정이었다. 그곳이 바로 로조바야 였다. 그날 내내 Das Reich 사단은 마을 외곽에서 소련군의 전차와 보병돌격을 감당해내고 있었다. 오후 늦게 15대에서 20대 가량의 T-34와 소련군 보병이 돌격을 개시하여, 방어선 외곽이 관통당했고, 삽시간에 마을의 북서쪽에서 치열한 혼전이 벌어졌다. 소련군이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하며, 마을의 중심부를 향해 가도상에서 진격하자, 잠시나마 위기상황이 연출되었다. 하인츠 마허와 그의 중대는 당시 3명의 부사관과 38명의 척후병으로까지 전력이 감소되어 있었지만, 상황을 되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전투소음으로 위기상황을 알아차린 마허는 척후중대를 이끌고, 시가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신속이 이동해 들어갔다. 기관총 사격과 전차 엔진의 기계음은 멀리서도 들을수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또다른 소련군 전차들이 마을로 진입해 들어왔고, 조심스럽게 전진하고 있었다. T-34에 분승한 소련군 보병들은 마치 유령처럼 자갈이 널린 길바닥으로 하차했다. 이들은 기관단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했었다. 독일 척탄병들은 전투소음이 들리는 곳으로 앞으로 나아갔고, 소련군과 충돌하면서, 어지러운 총격전이 벌어졌다. 수류탄이 작렬하는 화염속에서 자동화기의 섬광이 분출되었고, 전차 소리는 멀리서도 들렸다. 전차의 궤도소리는 점차 뚜렷해졌고, 이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좁은 통로를 따라 포복했고, 조명은 폭발과 총기 사격으로 발생하는 섬광정도였지만, 마허의 병력들은 2대의 T-34가 88mm 대전차포의 지근거리에 정지해 있음을 알수 있어다. 독일군 포조작원들은 어둠속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소련군 전차에 놀라서 포를 버리고 이탈했다. 마허는 바로 이웃 대대 지휘부에 전령을 보내 상황을 설명한 후 2개 전차 파괴조를 구성했고, 자신이 그중에 한 조를 맡았다. 그들이 전차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귀를 찢는 소음이 울렸다.
마허가 이끄는 대전차팀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동안, 나머지 일부 병력은 측면에서 소련군 보병의 접근을 차단하는 엄호를 했다. 어둠을 방패삼아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동안 마을 곳곳에서는 폭발이 일어났고, 번쩍이는 섬광과 그 섬광이 순간 만들어내는 가옥의 기나긴 그림자가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했다. 중사 한명이 전차에서 불과 10미터 떨어진 곳까지 포복해 들어갔지만, 전차 주변에 소련군 보병들이 깔려 있음을 확인하고, 더 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했다. 소련군 전차로의 접근이 불가능해지자, 앞서 나갔던 병사들은 버려진 8.8cm 포를 떠올렸고, 포대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들은 포 조작법을 몰랐고, 소련 전차는 불과 100m 떨어져 있었다. 4대의 T-34, 1대의 KV-1, 7대의 크리스티 경전차가 보일때 2명의 병사가 8.8cm 포에 도착했다. 밤이 지날 무렵 8.8cm 포 요원인 한명의 병장이 포로 달려와 익숙치 않은 무기를 다루려는 2명의 SS 병사를 도왔다. 포조작원의 지도 아래 8.8cm 포는 다시 장전되어 불을 뿜었다. 포탄이 T-34에 작렬했고, 전차는 폭발을 일으키며 멈춰섰다. 예기치 못한 위협에 소련군 병사들은 8.8cm 포에 사격을 가하지 않고, 전차를 경계하는 위치로 움직였다. T-34는 서둘러 건물뒤로 물러났다. 이런 혼란속에서 독일병사들은 전차에 접근하여 포탑에 집속지뢰를 설치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조심스럽게 포탑에 위치시킨 지뢰의 신관을 당기자 T-34는 포탑이 날아가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이렇게 2대의 전차를 상실한 소련군의 나머지 전차들은 어둠속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공격이 종료되자 척추중대의 1개 분대 병력은 88m 포 후미에 남아 엄호태세를 취했다. 마허의 재빠른 반응과 리더쉽으로 매우 심각할 뻔 했던 상황이 반전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공격이 실패했지만, 소련군의 공격이 끝났던 것은 아니었다. 4시 15분쯤..10대의 전차를 앞세운 소련군 보병의 공격이 재개되었고, 방향은 도이치란트 연대의 제 16 대대 구역인 교회인근 무덤가였다. 다시 한 번 마허는 반격을 시도했고, 소련군 공격대열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용감한 마허의 부하들은 소련군에 맞서 근접전을 시도하여, 교회일대에서 내쫒아 버렸다. 묘비석이 깨지고, 흩어진 부근에 소련군은 40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물러났다. 마허는 부하는 인명손실이 없었다. 독일군이 소련군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소련군은 교회와공동묘지 사이로 병력을 빼내어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 방어선이 신속히 제거되어야만, 다음번 독일군 공격의 발판이 마련될 터였다.
SS 대위 하웁트만 크라그가 이끄는 돌격포 들이 총통연대 소속 중대병력의 지원을 받으며 소련군 화력진지로 반격에 나섰다. 매우 교묘하게 소련군 진지선으로 접근하여, 크라그의 돌격포들은 7.5cm 주포를 발사하여 1대의 대전차포를 격파하고, 6개 기관총 진지를 근접사격으로 파괴했다. 이러한 효과적인 지원에 힘입어 SS 병사들은 소련군 외곽 방어선을 붕괴시켰고, 위험한 적의 거점제거는 물론, 심대한 병력 손실까지 강요했다.
지난밤의 치열한 야간전투가 끝나고 2월 24일 아침에 Das Reich 사단은 베르프키 일대의 소련군을 소탕하기로 결정했다. 토텐코프 연대는 브자소포크 일대에서 소련군에게 발이 묶어 있었으므로, 도움을 줄수 없었다. 소련군은 마을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전력이 약화된 징후는 없었다. 더구나, 아침이 되어서도 토텐코프는 전력을 집중시킬수 없었다. 바움이 지휘하는 토텐코프 연대의 제 1대대와 기갑연대는 예정보다 뒤쳐져 있었고, 늦은 아침이 되어서도 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오전 7시로 예정된 공격은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미뤄저야 했다.
공격이 연기될 것이란 전갈을 받은 직후에 토텐코프 제 3 대대구역으로 보병의 지원을 받는 소련군 전차들의 공격이 가해졌다. 이들 소련군은 제 35 저격사단의 잔여 병력으로 제 1 근위 전차군단의 잔여 차량도 동원했다. 제 1 근위 전차군단은 파블로 그라드 동쪽에서 Das Reich의 공격을 받고 본대와 차단된 상태였다. 소련군은 앞뒤가리지 않고 사마라 강변을 강행도하하며, 코체레시키 마을의 집결지로부터 남동쪽 방향에서 SS 대대를 공격해 들어왔다. 그러나, 독일군의 반응은 매우 신속했고, 소련군 공격대열의 옆구리로 반격을 감행했다. 공격적인 SS 병사들의 역습으로 소련군은 코체레시키 일대에서 구축되었고, 독일군의 인명손실은 매우 경미했다. 소련군은 68명의 포로를 남겼고, 다수의 전사자와 부상자도 발생했다.
코체레시키 일대의 소련군 반격이 실패한 후 독일군은 재 편성에 들어가 브자소포크를 다시 한번 공격할 준비에 들어갔다. 준비동안 기갑연대와 바움의 기갑척탄병대대가 바실례프카에 집결했고, 이 곳은 코체레시키 10Km 서방에 위치했다. 오전 9시 30분 토텐코프 연대 제 3 대대가 브자소포크를 북쪽으로부터 공격해 들어갔고, 토텐코프 연대 제 2대대의 1개 중대는 남쪽으로부터 행동을 개시했다. 기갑연대는 3개 제파로 나뉘어 진격했고, 바움의 하프트랙들은 전차의 후미에 위치했다. 이들은 브자소포크 북쪽 능선에 포진한 소련군을 향해 쇄도했다. 강력한 포격의 엄호아래 SS 전차와 하프트랙은 참호선을 넘어서, 기관총 진지를 깔아뭉개며, 능선의 끝자락까지 내달렸다. 소련군은 능선 너머로 무질서한 도주행렬을 이루었고, 이들의 뒤에서 무자비하게 가해지는 기관총 사격으로 수없이 많은 전사자를 남겼다.
그런 후에 척탄병과전차는 소련군 방어선 외곽을 강습하여, 마을로 들어가는 통로를 개척했다. 제 244 저격 사단과 제 17 전차군단 병력으로 이루어진 소련군은 교묘하면서도, 격렬히 저항해왔다. 몇 대의 T-34가 가옥사이에 참호를 파고, 기관총과 박격포의 엄호를 받으며, 교묘히 위장한 상태로 독일군을 맞고 있었다. 격렬한 전투로 양군모두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SS 병사들은 한치한치 소련군을 구축해 들어갔고, 첫 번째 화력 거점을 침묵시키고 나서는 하나하나 다음 거점들을 기관단총과 수류탄을 이용하여 습격해 나갔다. 수시간의 치열한 교전후에 소련군은 대부분 쫒겨나갔다. 거리 곳곳에 소련군 시신이 널렸고, 3대의 T-34가 불타올랐다. 오후 1시 35분이 브자소포크는 확실히 독일군의 수중으로 넘어왔다. 마을에 남은 최후의 소련군 거점을 소탕하는 동안 토텐코프의 전차와 바움의 대대는 브자소포크 북쪽 언덕의 잔여 소련군을 밀어내고 있었다.
마을의 남동쪽에서 재집결한 직후에 슐츠가 이끄는 토텐코프 연대 제 2대대는 후퇴하는 소련군 대열을 덮쳤고, 이들을 베르프키 외곽으로 밀어붙였다. 잠시후 바움의 전투단은 사마라강에서 수킬로미터 떨어진 지류를 넘어서 교두보를 확보했다. 바움의 대대와 전차들은 마을의 북쪽 어귀어 다다랐다. 작은 능선을 돌아설 무렵 토텐코프의 전차들은 전방에 출현한 수대의 전차와 병력을 보고 즉시 사격에 돌입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지휘관은 “사격중지! 저들은 다스 라이히 사단 병사들이다!!” 라고 소리쳤다.
그 전차와 병력은 쿰 전투단 소속으로 이들은 전날 점령한 베르프키에서 북쪽으로 발진해 나오던 중이었다. 토텐코프 소속의 전차 한 대에서 간략한 답신이 갔다. “ 우리는 가치있는 표적에만 사격합니다.” 다행히 Das Reich 전차병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우군의 포격으로 장비와 병력의 손실이 발생했지만, 2개 SS 사단은 손을 맞잡고 합류했다.
베르프키는 총통연대가 점령했지만, 토텐코프에 아무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아, 우군끼리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도이치란트 연대 소속 제 2대대와 지원전차들로 감행된 최후의 공격은 정오가 막 지날 무렵 베르프키에서 감행되었다.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들이 동원되어 진격로 전방에 대해, 치명적이며, 정밀한 폭격지원을 했다. 소련군은 포위 전멸을 피하기 위해 북쪽으로부터의 독일군 공격으로부터 접촉을 회피하면서, 마을에서 물러났다.
베르프키와 브자소포크의 함락후에 하르코프 방향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철도선을 따라 가해지는 소련군의 공격으로부터 파블로그라드의 안전은 확고해 질수 있었다. 토텐코프 연대 제 2대대는 2개 사단의 기갑병력의 전진을 엄호할 목적으로 재 편성되었고, 다음번 목표는 판주티나와 오렐카였다. 그 사이 SS 모터사이클 대대는 오렐카로부터 남동으로 향한 도로를 확보했고, 소련군의 예상되는 반격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보다 북쪽으로는 헬무스 베커의 토텐코프 제 3 기갑연대가 2개 사단의 주 진격 축선의 측면 방어를 위해 오렐강안에서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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